머릿돌 위에 세워진 삶
본문: 누가복음 20:9-19
중심 구절: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눅 20:17)
1️⃣ 권위가 무너진 시대, 우리는 무엇 위에 서 있나
"아니, 누가 나한테 그럴 자격 있어요?"
우리는 이 문장을 더는 낯설지 않게 듣습니다. 권위가 무너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에서는 수많은 전문가가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소셜미디어에선 누구나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발신합니다. 이제 우리는 부모님의 조언, 선생님의 가르침, 심지어 목회자의 설교까지도 의심하고 검증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 설문조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불쾌하다고 느끼는 서비스 직원 유형으로 '귀찮은 말투'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단지 말투의 문제가 아니라, 그 말투 속에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불쾌감이죠.
이 '존중'의 문제는 결국 '권위에 대한 인식'과 연결됩니다. 권위는 신뢰와 책임에서 비롯되는 건강한 질서이지만, 권위주의는 질문을 허락하지 않는 억압입니다. 문제는 이 둘을 혼동한 나머지, 우리는 건강한 권위마저 거부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삶을 지탱해 주던 기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누가복음 20장의 포도원 비유는 이 질문에 대한 깊은 답을 줍니다.
2️⃣ 포도원을 착각한 사람들: 무너진 권위의 실상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맡기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받을 때가 되자 종들을 보내는데, 농부들은 그들을 때리고 돌려보냅니다. 결국, 주인은 자신의 아들을 보냅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말합니다.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나님, 농부들은 종교 지도자들, 종들은 선지자들, 아들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왜 하나님의 사람들을, 결국 아들까지 죽이려 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이라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맡겨진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유욕이 생기고, 결국 주인을 밀어내기까지 합니다. 이 착각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둘째, 주인이 보이지 않자 자신들이 주인이라 여겼습니다.
주인이 타국에 오래 있다 보니, 그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농부들은 자신들이 중심이라 여겼죠. 우리도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질 때, 쉽게 중심을 잃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인내를 무능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종들을 보내시는 주인을 보며 농부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봐, 우리가 이렇게 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
결국 그들은 주인을 무시하고, 머릿돌이신 예수님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지 그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맡겨진 것을 내 것이라 착각하고, 기도는 하지만 순종은 없으며, 예배는 드리지만 예수님은 중심이 아닌 삶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3️⃣ 상속자를 죽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밀어낸 사람들
예수님의 비유는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시며 기대하십니다. "그들은 내 아들을 존대하리라." 그러나 농부들은 오히려 아들을 죽이고 유산을 차지하려 합니다.
이들이 아들을 죽인 이유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아들이 '상속자'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분이 주인이 되시면, 나는 내려와야 하니까요.
오늘날 우리도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밀어낼 때가 있습니다. 그분이 내 삶의 주인 되시기를 진심으로 원하기보다는, 조언자 정도로만 남아주기를 바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원하지만, 하나님의 간섭은 원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바로 종교의 껍데기이고, 머릿돌이 아닌 내 기준 위에 삶을 짓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비유의 끝에서 말씀하십니다.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리라." 그리고 거절당한 돌이 머릿돌이 되었음을 선언하십니다.
4️⃣ 거절당한 돌, 머릿돌이 되다: 다시 세워지는 삶의 기준
예수님은 시편 118편을 인용하십니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눅 20:17)
사람들이 보기에 쓸모없고 실패자처럼 보였던 예수님.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을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머릿돌이란 건물의 방향을 정하고 무게를 지탱하며, 전체 구조를 결정짓는 기준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 삶의 기준이 되십니다. 그분이 말씀의 기준이 되고, 십자가가 중심이 되며, 사랑이 전체 구조를 붙잡을 때, 비로소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 삶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은 거절당한 자도 다시 세워질 수 있다는 소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실패했나요? 인생이 무너졌나요? 예수님은 무너진 자리 위에 다시 세우시는 머릿돌이십니다.
5️⃣ 결론 – 기본이 무너진 삶, 다시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신앙은 결국 삶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포도원 비유 속 농부들은 하나님 없이 포도원을 차지하려 했고, 그 결과 기준 없는 종교와 주인 없는 삶을 만들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이런 모습은 반복됩니다. 기도는 하지만 순종은 없고, 예배는 드리지만 예수님이 중심이 아닌 자리. 화려하게 보이는 삶을 짓느라, 기초가 무너진 줄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 나는 지금 무엇 위에 내 삶을 세우고 있나요?
- 예수님은 내 삶의 중심 기준, 머릿돌이신가요?
삶의 기본이 무너졌다고 느껴지는 자리가 있다면, 그 무너진 자리 위에 예수님을 머릿돌로 다시 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회복의 시작입니다.
📌 오늘, 한 가지 실천을 시작해 보세요
이번 주,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이렇게 물어보세요:
"지금 내가 하려는 이 선택은 머릿돌 위에 있는가?"
매일 하루 한 번, 핸드폰 알람을 "감사의 타이머"로 설정해 보세요. 그 순간 어디에 있든, 예수님을 머릿돌 삼아 감사 기도한 줄.
마음속 무너진 관계가 떠오른다면, 먼저 대화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그 한 걸음을 내딛어 보세요.
이것이 예수님을 진짜 머릿돌로 삼는 삶입니다.
🙏 마무리 기도
"주님, 지금 이 자리에서 제 삶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세우겠습니다. 그분 위에 가정을, 관계를, 일터를, 내 미래를 지어가겠습니다. 주님, 저의 머릿돌이 되어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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